[산수몽 山水蒙 – 혼란 속에서 길을 배우는 사람]
⛰ 세상을 모르고, 스스로도 모를 때
산수몽은 왜 ‘무지’에서 시작하는가?
산수몽(山水蒙)은 위에는 산(山), 아래는 물(水)이 있는 괘다.
높고 무거운 산 아래, 가벼운 물이 흘러 나가지 못하고 갇힌 형상.
길이 보이지 않고, 마음은 닫혀 있으며, 세상은 알 수 없다.
이것이 곧 ‘몽(蒙)’이다.
《계사전》은 말한다:
蒙以養正 聖功也
무지를 바르게 기르는 것, 그것이 성인의 일이다.
즉, 산수몽은 ‘어리석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스스로 무지함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배움의 문 앞에 설 수 있다는 말이다.
📘 육효로 읽는 배움의 구조
– 효사 원문과 해석
① 初六(초육)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吝
무지를 일깨우려면, 벌을 써야 한다.
속박을 풀어주는 데는 이롭지만, 나아가는 것은 부족하다.
초육은 가르침이 필요한 위치다.
잘못을 깨닫기 위해 때론 충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강제만으로는 진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구속을 풀어주는 동시에 바른 길로 유도해야 한다.
✅ “가르침은 채찍보다, 통로다.”
② 九二(구이)
包蒙 吉 納婦 吉 子克家
무지를 포용하면 길하다.
아내를 들이면 길하고, 아들은 집안을 이룬다.
이 자리는 무지한 자를 올바르게 품는 가르침의 자리다.
제자에게 단순히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능성과 성장을 함께 품는 것이다.
✅ “가르친다는 것은, 함께 자란다는 뜻이다.”
③ 六三(육삼)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여자를 억지로 취하려 하면
금전적 이익만 보고 몸은 다치고, 이롭지 않다.
배움이 목적이 아니라 욕망이 개입되면
결과는 손실로 이어진다.
이해관계를 앞세운 배움은 자기도 망치고, 타인도 해친다.
✅ “배움에 목적이 있으면, 성장은 없다.”
④ 六四(육사)
困蒙 吝
가르치려 하나 통하지 않아 괴롭다.
이 자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가르치려는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도 답답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괴롭다.
진심 없는 가르침은 통하지 않는다.
✅ “진심 없는 가르침은 침묵만 낳는다.”
⑤ 六五(육오)
童蒙 吉
아이 같은 어리석음은 길하다.
이 효는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말한다.
스스로를 낮추고, 배움에 마음을 연 사람.
그 사람은 반드시 자란다.
✅ “모른다는 걸 아는 순간, 문이 열린다.”
⑥ 上九(상구)
擊蒙 不利為寇 利禦寇
무지를 억지로 깨뜨리려 하면 이롭지 않다.
그러나 그 무지가 해가 될 때는 막는 것이 이롭다.
때로는 무지가 해가 된다.
그럴 땐 부드러운 가르침이 아니라,
단호한 경계가 필요하다.
✅ “어리석음은 품되, 해를 끼치면 막아야 한다.”
📚 고전이 말하는 진짜 배움
《논어》에서 공자는 말한다:
知之為知之 不知為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앎이다.
— 『논어 · 위정편』
《맹자》는 덧붙인다: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배움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 『맹자 · 고자하』
《장자》는 말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큰 완성은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 그 쓰임은 다하지 않는다.
— 『장자 · 대종사』
🧭 산수몽이 남기는 단 하나의 문장
무지한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이 위험할 뿐이다.
'주역 64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양철학 주역 64괘 [천수송 天水訟 – 다투지 않고 이기는 사람의 기술] (0) | 2025.04.04 |
---|---|
동양철학 주역 64괘 5편 [수천수 水天需 – 기다림을 견디는 사람의 운] (0) | 2025.04.04 |
동양철학 주역 64괘 3 수뢰둔 水雷屯 – 막힘 속에서 중심을 세우는 사람 (0) | 2025.04.04 |
동양철학 주역 64괘 2편 [곤괘 坤卦 – 땅처럼 모든 것을 품는 사람] (0) | 2025.04.04 |
동양철학 주역 64괘 1편 [건괘 乾卦 – 하늘처럼 스스로를 세우는 사람] (1) | 2025.04.04 |